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이언 긱스 (문단 편집) === 국가대표 경력 === [[파일:external/cfs10.blog.daum.net/4752b3a708d91&filename=%EA%B8%B1%EC%8A%A4%EA%B5%AD%EB%8C%80%EB%A7%88%EC%A7%80%EB%A7%89%EA%B2%BD%EA%B8%B0.jpg]] 요약하자면 클럽 선수로서는 화려한 커리어를 누렸지만, 국가대표로선 녹록지 못한 조국의 국가대표팀 전력을 극복하지 못한 채 [[FIFA 월드컵]]은 물론이고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마저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비운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조지 웨아]], [[클라우디오 피사로]] 등과 더불어 명성에 대비되는 부실한 국대 커리어로 곧잘 거론되는 선수다. ||'''"[[FIFA 월드컵]] 대회 중에 언제나 나는 늘 작은 방에 틀어 박혀 있었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기억해주겠지요. 이 영광의 대회 팬 중에는 영국의 작은 나라의 한 선수, 라이언 긱스가 있었다는 사실"''' [br][br] - 라이언 긱스가 FIFA 월드컵의 꿈이 좌절된 소감을 웨일스의 축구 전문지에다 직접 기고한 편지의 내용에서.|| ||'''"잉글랜드 대표가 되길 희망했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되는 질문이 여전히 날 괴롭힌다. 난 웨일스인이다. 이것으로 모든 이야기는 끝이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내 부모와 아무 관계도 없는 잉글랜드를 위해 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br][br] - 라이언 긱스에게 "왜 잉글랜드 대표가 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영국]]에 나뉘어 있는 네 개의 축구협회를 선택하는 것에서 우선하는 것은 출생지와 부모 및 조부모의 출신지였다. 외국에서 태어나는 등의 일정한 특수요건이 있다면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한데 라이언 긱스의 친할아버지는 시에라리온 국적, 친할머니, 외조부모는 모두 웨일즈 출신에 어머니와 아버지마저도 웨일즈 출신이었다[* 아버지인 대니 윌슨이 잉글랜드 출신 또는 대표팀이었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정보다. 사실 대니 윌슨은 웨일즈 럭비 대표에 뼛속까지 웨일즈 사람이었고, 잉글랜드 럭비 리그에서 뛸 때도 자신이 웨일스 출신이라는 것을 어필했다.]. 그나마 긱스 자신의 출생지도 웨일즈의 중심지 카디프. 현재 개정된 영국 국대 선발 규정대로라면,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뛸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어떤 식으로든 잉글랜드 대표팀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라이언 긱스가 프로 데뷔하던 당시 잉글랜드 U-21 대표팀에서도 그를 뽑으려 했지만 이러한 사실 때문에 '''뽑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긱스는 어렸을 적 잉글랜드 학생선발팀의 주장으로 뛴 적이 있어서 오해를 부른 듯 하나 규정상 당시 학생선발팀의 발탁 기준은 선수의 출신이 아니라 거주지였다. 즉 국가대표와는 연관이 아예 없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08&aid=0000000320|월드컵 비운의 별 긱스의 비하인드 스토리]] 결국 라이언 긱스는 1991년 웨일스 U-21대표팀에서 단 한경기를 뛰고 바로 웨일스 성인 대표팀에 차출, A매치에 데뷔하게 된다. 물론,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규정이 있더라도 어차피 같은 영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니 규정을 뜯어 고쳐가며 데려올 수도 있을 위인들이지만 그것은 라이언 긱스 자신도 그렇게 해서라도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뛰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영국 현지,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긱스와 잉글랜드 대표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왼쪽 윙 자리는 20년이 넘도록 답이 없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잉글랜드는 수비면 수비 공격이면 공격 게다가 조직력까지 갖춰져 있었던 명실공히 강팀이었다. 당시 맨유가 자랑하던 좌긱스-우베컴 라인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가동했다면 한 번 정도는 우승을 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레스 베일]]이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웨일스 국가대표 최연소 데뷔'''였으며, '''웨일스 국가대표 역대 최장기간 주장 역임'''이었다. 사실상 긱스 이외에는 전력이 참 눈물나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기라도 있다치면 베컴, 네빌, 퍼디낸드 등 클럽팀에서 똑같이 우승을 맛봤던 동료들을 상대로 다구리를 맞아야 했던 긱스였다. 어느 인터뷰에서 긱스는 '''"분명 내가 공격하고 네빌이 나를 수비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국가대표 경기에서의 모습은 (웨일즈의 전력이 약해서) 늘 반대였다."''' 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파일:external/i55.tinypic.com/121qrra.jpg]] 결국 2007년 여름, 체코와의 [[UEFA 유로 2008|유로 2008]] 최종예선 경기[* 이 경기는 양쪽 모두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났다. 참고로 웨일스는 체코와 독일에게 밀려 최종 5위로 탈락하였다.]를 끝으로 눈물없이 볼 수 없었던 그의 국가대표 경력을 끝냈다. 팬들은 사방에 플랜카드를 걸고 주장 완장을 내려놓는 국가의 레전드의 뒷모습에 박수와 함께 눈물을 뿌렸다. 이렇게 긱스의 국대 경력이 끝났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영국 단일팀(Team GB)최종엔트리에 선발되었다. 올림픽 대표팀은 일반적으로 국대라 불리는 A 대표팀이 아니라 U-23 대표팀이고, 긱스가 평생 뛰었던 웨일스 대표팀이 아닌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팀이지만 그의 국제대회 마지막 도전이라 그의 팬들은 은근히 호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주장 자리에도 낙점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6282237101&code=980201|#]] 본선 조별예선 2차전 UAE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이 득점은 올림픽 축구 역대 최고령 득점으로 기록. 1924년 파리 올림픽 당시 이집트의 헤가지가 보유했던 기록(27세)을 갈아치웠다.최고기록이 27살의 나이라 언제든지 깨질 기록이었다만 무려 만 38세의 11살차이라는 압도적인 나이차로 기록을 세워버렸다.] 주장으로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8강 대한민국 전에서도 승부차기에서 영국 단일팀의 4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시켰으나, 불행히도 팀은 5번째 키커였던 다니엘 스터리지의 킥이 이범영 골키퍼에게 막히고 대한민국의 5번째 키커 기성용의 킥을 막지 못하며 승부차기에서 녹아웃됨에 따라 긱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대항전 본선 도전도 막을 내렸다. 올림픽 축구종목은 A매치가 아니기에 결코 메이저 대회라고 할 수 없지만 긱스의 국가대표 커리어가 선수 본인의 클라스에 비해 워낙 부실하다보니 탈락에서 속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웨일스 대표로 월드컵에 한번도 못 나간 것에 한이 맺혔는지 2002년 월드컵 기간에 집에서 혼자 노는 긱스라는 주제로 몇개의 웃긴 리복 CF를 찍었다. 혼자서 집 정원에서 웨일즈 국대 유니폼을 입고 잉글랜드를 상대로 월드컵 결승전에 나간 상상을 하며 노는 것이 특히 웃기다.[[https://www.youtube.com/watch?v=Xfjsc02dAAQ|#]] 끝끝내 긱스가 은퇴할 때까지 웨일스는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은퇴 후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드디어 64년만에 진출에 성공한다.--그리고 이란한테 발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